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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한경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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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영*님의  답글을    옮김]

고전10:23~33 (말씀 중 일부 발췌 했습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이 말씀을 통해서 바울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어집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다루든지간에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① ’가하냐? 불가하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떤 일을 접근할 때 ①’가하냐? 불가하냐?‘라는 입장에서 시작되면 이는 대단히 초보적이고 유아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태도가 아님을 서두에서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아야 하겠습니까? 그것이 ②’유익한가?  ③덕을 세우는가?‘하는 것입니다. 나를 비롯하여 우리 모두의 신앙을 위해서 ’②유익한가?’하는 것을 물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연 ③‘덕을 세우는 일이냐?‘하는 시점에서 어떤 문제를 접근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술을 먹는 것이 ①‘가하냐? 불가하냐?‘라고 묻는다면 성경은 술을 먹는 것에 대해서 금한 부분도 있지만 허용한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술을 꼭 먹지 말라는 법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술을 먹으라고 권유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애매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왜냐면, 성경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을 해야하는가 말아야하는 것이 아니라 유익한가 아닌가의 관점에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술을 먹는다는 얘기는 그 행위가 나에게 유익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먹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술을 먹지 않아야 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 유익을 주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의 건강을 위해서 포도주를 먹을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런가 하면 잠언에 보면 포도주라는 것을 쳐다보지도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술이라는 것은 우리 인생을 망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술을 먹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하는 시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보고 있는 시각은 ②‘유익한가? 무익한가?‘입니다. 술을 먹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면, 건강에 약이 되어진다면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 때문에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먹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술을 먹기 시작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그리스도인이, 전혀 술을 하지 못하던 사람이었는데 신앙의 문제와 인생의 문제로 불면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선생님의 처방이 포도주를 마시면 잠을 자는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포도주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술을 안 먹던 사람이기 때문에 금방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잠을 자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날마다 술을 마시고 자다 보니 어느덧 그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처음에는 잠 때문에 술을 먹었는데 이제는 술 때문에 술을 먹게 된 것입니다. 술맛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제 안 먹어도 되는 데도 알콜중독의 증세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심해져서 낮에도 먹게 되고, 술을 즐기다 보면 결국 인생을 파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문제가 ② ‘나에게 영적으로 유익한가?‘를 먼저 생각합니다.①’가하냐? 불가하냐?‘를 생각하는 것은 아주 초보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누군가가 술을 먹는 것이 가한가라고 물어본다면, 술을 마시는 것은 가합니다. 먹어도 됩니다. 그런데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마시지 못하게 하는 것이냐면, 우리나라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님이 오셨습니다. 이 분들이 사역을 하면서 우리 민족의 성향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한번 마시면 끝을 내는 민족인 것을 파악한 것입니다. 그래서 술이라는 것을 먹어도 된다고 하면 믿음 생활을 할 수 없는 민족적인 특성이 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믿음생활을 잘 하다가도, 특히 토요일에 약속을 하고 주일날 오기로 했는데 정작 주일날에는 오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고 가보면, 이미 고주망태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서양에서의 술이라는 것은 문화입니다. 예수님도 가나안 혼인잔치에서 물을 술로 만들어서 먹게 했습니다. 그것은 술로 인해서 윤활유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술을 마시면서 서로 친분도 쌓고 깊이 있는 교제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대화 가운데서 칵테일 한 잔 정도면 충분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술 문화는 대화의 윤활유로서가 아닌, 한 자리에서 폭주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사님들이 술을 금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마약을 하는 것 또한 가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②유익하냐고 물으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햐냐고 묻지 말고 ②유익하냐고 물으십시오. 그리고 한 단계 더 나아가서 그것이 ③덕이 되는 일이냐 하는 것입니다. 나에겐 유익할지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지 못하는 일이라면 삼가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유익보다 덕이 훨씬 더 큰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머물지 않고, 성경은 차원높은 질문을 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④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31절)’ 이것이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이 질문해야 할, 어떤 문제든지 접근하는 시각입니다. ‘카지노판에서 도박을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냐?, 담배를 피우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냐?‘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가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모든 명절의 놀이를 평정한 것이 고스톱입니다. 그러면 먼저, 고스톱치는 것이 가합니까? 네 가합니다. 두 번째, 고스톱 치는 것이 유익합니까?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유익합니다. 세 번째로 고스톱을 치는 것이 덕이 됩니까? 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고스톱을 ④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치는가?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이런 질문 앞에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생활의 원리입니다.

23절 ‘누구든지 자기 이익을 구치말고 남의 이익을 구하라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고린도 지역의 문화입니다. 신전이 많았던 고린도 지역에서는 시장에 나오는 고기들의 대부분이 신전에서 제사를 지내고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은 모두가 문화 속에서 알고 있는 내용인 것입니다. 모든 음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먹을 자유를 주셨습니다.

26절 '이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이니라’


그리고 실제로 주님 앞에 우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얼마든지 묻지 말고 먹으라는 것입니다.

27절 ‘불신자중 누가 너희를 청하매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불신자 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상제물로 손님접대를 할때에 묻지 말고 그냥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28절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누군가가 이것이 제사음식이라고 말하면 먹던 것을 뱉고,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든지 먹을 수 있지만 그 사람의 양심을 위해서, 유익을 위해서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29절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양심은 내 양심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양심이라는 말입니다. 교회 어떤 사람이 히피 차림을 하고 왔습니다. 그것이 가합니까? 불가합니까? 네, 가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사람,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에게는 마음에 자유를 느끼지 못하고 예배가 편안하지 못하다면 자신은 자유를 누렸지만 그 자유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된다는 바울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다른 사람이 그것으로 인해 마음에 거리낌을 가질 수 있다면 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은 나는 자유롭지만 또 다른 것으로 매여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닌 주의 영광을 위해서 자유가 쓰여져야 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쓰여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30-31절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다 하는 것에 대해 비방을 받으리요 그런즉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다른 성경에서 고기 먹는 모습을 통해 누군가가 양심에 거리낌을 느낀다면 자신은 평생을 고기 먹지 않겠다고 작정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다른 사람의 신앙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그가 나로 인해서 신앙양심에 거침돌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모든 것들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가합니까? 불가합니까?’라는 유치한 질문은 마음속에서 던져 버리십시오. 그리고 믿음의 단계가 점점 깊어지도록 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하는 물음보다 더 큰 최고봉의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 물어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라고 결정이 나더라도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아니라’라고 하시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일은 다 요구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진다고 할지라도 어떤 상황과 경우에 따라서 성령께서 내 안에서 그 일을 금할때가 있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음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성령께서 통제하신다는 느낌이 있을때는 멈추어야 합니다. 이것이 최고의 삶의 원리, 성령을 좇아 사는 삶입니다.

지금까지 말씀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그리스인의 삶의 원리가 5단계로 이루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① 가장 어리고 유약한 믿음의 단계는
‘가합니까? 불가합니까?(죄냐 아니냐)’를 묻는 단계입니다. 믿음이 생기고 말씀으로 깊어지면

②두 번째 단계로 가는데 ‘유익한가?’하는 것입니다.

③세 번째 단계는 ‘덕이 되는가?’입니다. 그리고

④ 네 번째 단계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지는가?’입니다. 그리고

⑤마지막 단계는 ‘주님 이것을 하길 원하십니까?’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항상 ‘내가 이것을 하리까? 말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응답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통제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해서는 안될 일을 하게되면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거리낌을 주시면서 어떻게 해야할 것을 알려주십니다. 그 성령을 좇아사는 삶이 최고봉의 삶이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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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영*님의  설명에 대한 운영자 한경석*의 평

대단히  설명을 잘하셨습니다.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정리]
① ‘가합니까? 불가합니까?
② 나에게 ‘유익한가?
③ 남에게 ‘덕이 되는가?’
④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지는가?’
⑤ ‘주님 이것을 하길 원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