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철 목사와 몇 사람의 한마음교회 비판에 대한 반박

글쓴이 
이 인 규 : 평신도 이단대책 협의회 대표
기독교 이단대책 협회 전문위원

이단성과 다양한 신학적 견해는 다른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나의 신학과 다르다고 하여 이단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정통신학 안에 있는 다른 견해를 이단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교리주의가 되며, 이러한 주장은 독단적이며 배타적인 견해가 됩니다. 이러한 편협적인 주장은 자기의 주장과 자신이 알고 있는 좁은 스펙트럼의 신학만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교리주의가 될 것입니다 

특히 미국에서 온 정이철 목사는 작년에 감리교가 가톨릭과 같은 세미 펠라기우스로서 행위구원론을 가르친다고 주장한 적이 있는데,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감리교의 교리와 장정은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주장은 감리교 신학을 전혀 모르는 무지에서 나온 것입니다. 

(기독교 대한 감리회 교리와 장정)
제2장 교리
제1절 신앙과 교리의 유산

종교의 강령 

23. 제 9조 사람을 의롭게 하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오직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음이요. 우리의 행한 것이나 당연히 얻을 것을 인함이 아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 하는 것이 가장 유익하고 위로가 넘치는 도리이다.

24. 제 10조 선행
선행은 비록 믿음의 열매요 또한 의롭다하심을 따라오는 것이되, 능히 우리 죄를 없이하지 못하며 또한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 위엄하심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선행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기뻐하시는 바요, 참되고 활발한 신앙으로 좇아 나오는 것인즉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아는 것 같이 선행을 보고 그 활발한 신앙이 있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정이철 목사는 금년에 한국에 와서 문제가 많은 에스라 하우스 노우호 목사의 교회에서 세미나를 했으며, 춘천한마음교회를 반대하고 비판해 온 어느 목사의 교회에서 세미나를 했습니다. 물론 항공요금을 충당하기 위하여 세미나 강사를 하는 것까지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전혀 알지도 못하고 들어본 적도 없는 춘천 한마음교회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저는 춘천 한마음교회(김성로 목사)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단 제가 직접 그 교회를 직접 방문하여 설교를 몇 번 듣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교회의 책자를 조사한 후에 내린 결과는 “사소한 문제점은 있지만, 이단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제 견해는, 춘천 한마음 교회는 정이철 목사보다 더 건전하며 몇 배는 낫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정이철 목사에 대해서 별로 상대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지만, 춘천 한마음교회에 대한 정이철 목사와 몇 사람들의 견해에 대해서 반박을 하여 보려고 합니다. 과연 그들이 비판하는 내용이 사실일까요? 
그들은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1) 예수님이 “온 인류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셨다는 주장이 잘못인가? 

감리교는 만인 속죄론을 주장하고, 장로교는 제한 속죄론을 주장합니다. 
물론 만인 속죄론은 만인이 구원을 받는다는 뜻도 아닙니다. 만인 속죄론은 온 인류의 죄를 위하여 예수님이 돌아가셨다고 주장하는 것으로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만인 속죄론을 주장한다고 하여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은 교리주의적인 생각이며, 그런 생각이라면 감리교, 성결교, 구세군등 웨슬레 신학이 모두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특히 만인 속죄론을 이단이라고 생각하는 단체가 있다면 웨슬레안으로서 성결교의 이모 목사는 자신이 속한 교단의 신학을 반대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다른 교단의 신학을 무조건 이단시 한다는 자체는 곧 비난을 하는 당사자에게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자신이 속한 교단의 신학을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특히 침례교의 신학은 개교회주의로서 캘빈주의, 웨슬레안, 알미니안 등의 신학이 개교회에 따라 자유롭습니다. 만인 속죄론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고 하는 주장 자체가 아주 잘못된 주장입니다. 제한 속죄론과 만인 속죄론은 500년간 신학적 논쟁을 하였던 문제로서 어느 누구도 다른 견해가 잘못이라고 결정된 문제가 아니며, 모두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 신학입니다.

행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요일 4: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2) 부활을 강조한다? 

춘천 한마음교회는 부활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분명히 사실이며, 그러나 부활을 강조하면 이단인가요?
부활이 없으면 믿음도 없고, 죄 가운데 그대로 있을 것이며, 거듭남도 없으며, 소망도 없다는 주장은 잘못된 주장이 아니라 모두 성경적인 내용입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의 복음은 모두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이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아마 성경적인 지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여러가지로 분류할 수 없지만, 부활이 복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어야 합니다

한마음교회는 부활을 강조하지만, 다른 복음은 잘못되었으며 부활만이 유일한 복음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한마음교회가 십자가를 부정한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닌 거짓 매도에 불과합니다. 김목사는 “십자가 죽음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되며, 부활의 소망을 함께 가져야 한다”라고 말한 적은 있습니다. 
부활을 강조하다 보니 표현상 사소한 문제가 있었지만 모두 수정하겠다고 하였으며 표현상 약간의 실수가 있었을 뿐입니다. 실제로 한마음교회는 전에 사용하던 교재를 모두 수정하였습니다. 특별히 부활을 강조하다보니 일반 교회와 다르다고 하는 차별을 말한 적이 있었으며. 이러한 점에 대해서 솔직히 인정하고 본의가 아니기 때문에 주의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루터는 칭의를 강조했고, 캘빈은 중생을 강조하였으며, 웨슬레는 성화를 강조하였습니다. 강조하는 점에 따라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며, 만약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며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는 내용은 성경적인 내용입니다. 부활을 강조한다고 하여 이단이라는 주장은 있을 수 없는 주장입니다.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성경 말씀을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고전 15:16-17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롬 6:5-7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만약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불쌍한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삶과 소망을 얻게 됩니다. 기독교는 내세를 강조하는 종교입니다.

고전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예수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로 산 소망이 있게 하십니다. 이것은 한마음교회의 주장이 아니라 성경적인 주장입니다. 이것을 잘못이라고 부정한다면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거나 오히려 그 사람이 성경적이 아닌 주장이 될 것입니다. 부활을 강조한다고 하여 이단인 것처럼 모함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만약 주님이 부활하시지 못했다면, 우리가 종말적으로 부활하지 못한다면(가정법입니다), 모든 것은 헛된 것이 되며, 기독교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벧전 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3) 아담과 함께 죄를 지었다고 하면 이단인가?

춘천 한마음교회에서 "우리가 모두 아담과 함께 죄를 지었다"라고 하였더니, 그것을 선재설이라고 비난하는 것을 보고 웃음만 나옵니다. 
원죄에 대한 신학적인 견해에는 직접전가설과 간접전가설이 있으며, 아담이 인류의 대표가 된다는 것을 언약적대표설이라고 하는데, 언약적대표설은 간접전가설이 아니라 직접전가설입니다. 
직접설에는 언약적대표설과 선재설이 있는데, 선재설(실재설)이라는 것은 아담의 영혼에 모든 인류의 영혼이 함께 포함 또는 실재하여 있었다는 잘못된 주장입니다. 
언약적대표설을 간접전가설로 간주하는 것이 오히려 신학적인 오류이며, 우리는 아담이 인류의 대표로서 우리는 아담과 함께 죄를 지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옳은 견해입니다. 춘천 한마음교회의 주장은 우리의 영혼이 아담의 영혼과 함께 존재하여서 아담과 함께 죄를 지었다는 선재설이 아닙니다.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으며, 로마서 5장12절 “이와같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신학적인 견해가 있으며, 이것은 이단성의 문제라고 주장할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그런 주장이 오히려 독단적인 견해가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는 우리는 아담의 영혼 안에 우리의 영혼도 함께 실재하여 있어서 함께 죄를 지었다는 실재설, 선재설을 주장하면 안 되지만, 간접전가설을 주장하여도 안 됩니다. 김성로 목사는 우리의 영혼이 태초부터 아담의 영혼과 함께 있어서 아담과 함께 죄를 직접 지었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간접전가설을 주장하는 림모 목사는 개혁주의의 주장이 아닙니다. 참고로 펠라기우스는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으므로 아담의 죄는 우리의 죄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아래 언약적 대표설에 대한 신학자들의 다양한 견해를 첨부하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신학자들을 모두 이단이라고 할만한 용기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참고: 언약적 대표설에 대한 신학적 견해 

1) 이것이라는 지시대명사를 남성관계대명사로 보아 선행사를 아담으로 보고,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로 해석하는 견해(오리겐, 어거스틴 등)
2) 이것이라는 지시대명사를 남성관계대명사로 보아 선행사를 사망으로 보고, "사망 안에서..."로 해석하는 견해
3) 이것이라는 지시대명사를 중성으로 보고, "왜냐하면"으로 해석하여, "아담이 범죄하여 죽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도 범죄하여 죽게 되었다"로 해석하는 견해(Sanday, Headlam, 헤리슨, 벵겔, 부루스등)
4) 이것이라는 지시대명사를 중성으로 보고, "아담이 범죄한 것 같이 모두가 범죄하여 사망에 이르렀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견해(로테, Wette)
5) 이것이라는 지시대명사를 중성으로 보고, "모든 사람이 죄를 짓는 한, 사망에 이른다"로 해석하는 견해(Ewald, Tholuck)

(1)번은 실재설이며, (2)번은 간접전가설이 될 것이고, (5)번은 자범죄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는 내용으로서 펠라기우스의 주장이 된다. 정통신학적인 견해는 (3)번과 (4)번이 될 것이다.
개역성경과 표준새번역은 (3)번의 견해로서 "이와같이"를 "죄"로 해석하였으며, 공동번역과 현대인의 성경은 (4)번의 견해로 "이와 같이"를 "사망"으로 해석하였다.

원죄에 대한 신학적인 견해는 크게 두가지로 분류하거나 혹은 세가지로 분류한다. 즉 (1) 실재설 (2) 직접전가설 (3) 간접전가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언약적대표설은 직접전가설에 속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견해이다.
또한 원죄에 대한 신학적인 견해를 직접설과 간접설 두가지로 분류하는 신학적견해가 있는데, 이 경우 언약적대표설은 간접설이 아니라 직접설로 분류된다. 물론 모든 인류의 영혼이 아담의 영혼 안에서 함께 존재하여 직접 죄를 지었다는 의미는 아니며, 인류의 머리 또는 공적인 대표로 함께 죄를 지었다는 뜻이다. 

실재설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 개개인들의 영혼이 아담의 영혼과 함께 직접 범죄를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재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히브리서 7:9-10을 인용하는데,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났을 때에 레위가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다는 구절이다. 그러나 이 성경구절은 문자적이 아니라 상징적인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실재설은 영혼유전설을 근거로 하는데, 이러한 주장은 비성경적인 주장이 된다.
그렇다면 아담의 죄가 우리에게 간접적으로 전가되었다고 보아야 할까? 결코 그럴 수는 없다. 간접적전가설은 아담의 죄가 생식적인 방법으로 인류에게 전해졌다는 주장이고 이것은 예수의 무죄성을 증거할 수 없게 된다. 
또한 모든 인류가 아담과 같이 자범죄를 짓는다는 것을 뜻할까? 그렇다면 죄의 삯이 사망이라는 이유로, 영아가 태어나자마자 죽은 경우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게된다. 

즉 언약적 대표설은 직접설이며, 구체적으로는 직접 전가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다만 직접 전가는 우리의 죄성에 대한 오염이 직접 전가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죄책(죄에 대한 책임, 즉 정죄함)이 전가된 것을 뜻한다. 즉 죄의 오염이 실제로 부모로부터 그들의 후손에게 어떻게 전가되는가에 대해서는 신학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가 된다. (안토니 후크마, 개혁주의 인간론, 기독교 문서 선교회, 270쪽)

직접전가설에서 아담과 인류의 관계는 두가지로 설정된다
첫째는 아담이 인류의 머리라는 것이고, 둘째는 아담의 범죄는 인류의 범죄라는 것이다.(조직신학, 인간론, 임영옥, 107-108쪽)

루이스 벌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담은 인류의 조상으로서 범죄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후손자들의 대표자로서 범죄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범죄는 그들에게도 적용되었으며, 따라서 그들은 부득이 사망의 형벌을 받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던 것이다. 원래 그러한 의미에서 아담의 죄는 모든 사람의 죄인 것이다. 이것은 바울이 로마서 5장12절에서 가르치는 바이기도 하다. 즉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이다. 나중에 있는 말씀은 단지 그들 모두가 아담 안에서 범죄하였고,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사망의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범죄였다는 것만을 의미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타락으로 간주된 죄가 아니라, 벌을 동반하는 범죄인 것이다.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아담 안에서 범죄한 죄인들로 판단하시는 것같이 모든 믿는 자들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운 자로 판단하신다.”(루이스벌콥, 벌콥조직신학 상권, 489쪽)

즉 루이스벌콥은 (1) 직접설 (2) 직접전가설 (3) 간접전가설로 구별하는데, 직접설에 대해서는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며 직접전가설이 곧 언약적대표설이며,그는 원죄를 원시적죄책과 원시적오염으로 정의하여 전가되어짐을 말한다. (루이스벌콥, 기독교신학개론 153-157)

다시 말하여 원죄에 대해서 우리의 영혼이 아담의 영혼과 함께 있거나, 아담의 영혼에 포함되어 있어서, 아담과 함께 직접 죄를 지었다고 말하는 실재설도 잘못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아담 안에서 죄를 짓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죄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펠라기우스적인 주장으로서 당연히 잘못이다. 물론 원죄는 우리의 죄가 아니며 다만 간접적으로 전가되어지는 것뿐이라고 말하는 것도 오류이다.
황승룡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담의 이같은 첫 범죄는 아담 자신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연대성 때문에 그의 모든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아담의 타락은 타락한 인간성을 그의 자손들에게 물려주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아담은 인류의 조상으로 범죄했을 뿐 아니라 그의 모든 후손들의 대표로서 범죄했기에 그의 범죄는 그의 모든 후손들에게까지 적용된다. 이런 의미에서 아담의 죄는 모든 사람의 범죄가 된다. 이것이 바울이 로마서5:12에서 가르치는 바이다.” (황승룡교수의 조직신학, 상권 예수교장로회총회 309-310쪽)

이것에 대해서 안토니. A. 후쿠마의 개혁주의 인간론에서는 헤르만 바빙크의 견해를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언약적대표론(federalism, 즉각적인 혹은 직접적 전가의 견해로 후에 다뤄질 것이다)은 실재론에 숨겨져 있는 진리를 배제하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이 진리를 온전히 수용하며 그 진리로부터 한발 더 나아가며 거기서 멈추어 서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이 두 노선의 해석을 (실재론과 즉각전가) 구분하여 왔다. 그러나 이 둘이 한데 합쳐져야 한다는 것이 나의 확신이다.다시 말해서 죄의 전가를 이해함에 있어서 이러한 두가지 노선에 대한 우리의 결정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양자를 함께 포함하는 문제이다. 
아담으로부터의 죄의 전가에 대한 또다른 견해인 ‘즉각전가’는 아담의 죄책의 전가가 그 어떤 것에 의해 우리에게 중개되어진 것이 아니라 그 죄책은 즉각적이고 직접적이라고 가르친다.즉각적이라는 용어가 시간에 있어서 긴박성을 나타내고 그런 점에서 다소간 혼란을 야기시키기에 나는 이 견해를 ‘직접전가’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 견해는 헤르만 바빙크, 메이첸, 폴맨, 존머레이, 그리고 루이스벌코프에 의해서 주장된다“(개혁주의인간론, 기독교문서선교회, 안토니후크마, 268-269쪽)

원죄에 대한 정통신학적인 견해는 언약적대표설이다. 그러나 이 언약적 대표설은 실재설과 동일하게 생각할 수 없지만, 그러나 간접전가설도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원죄에 대해서 우리는 실재설을 주장할 수는 없다. 성경적인 표현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영혼이 모두 “아담 안에서 죄를 지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아담의 죄는 우리의 죄”라고 말할 수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직접전가설이 되어야 한다.

IVP 성경주석 로마서5장, 1559쪽을 보면 “아담의 불순종의 행위를 극복하는 그리스도의 순종의 능력이 이 단락의 위대한 주제이다.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인류를 대표하는 인물로 제시하고 있으며 그들의 행동이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 아담이 범죄하였고, 그의 죄를 통하여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의 죄와 죽음이 임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가 순종하였고 그 분의 순종을 통하여 그 분에게 속한 모든 사람에게 의와 생명이 임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감리교 웨슬레목사의 견해는 어떤지 살펴보자 

“원죄가 유전되는 이유에 대해서 웨슬레는 아담은 전 인류를 대표하는 시조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점에서 아담이 처음 지은 죄는 그의 모든 후손들을 대표하는 공적인 사람의 죄라고 보았다.공인이요 전체 인간의 머리인 아담은 자기의 모든 후손들을 대신해 행동하였으며,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대표로서 행동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으며, 따라서 그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게 되었다.” (웨슬레조직신학, 성광문화사, 89쪽)

어쨌든 위에서 설명하였듯이 롬5장12절에 대해서 복음주의 학자들은 많은 견해차이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복음주의 신학에서는 육체적인 죽음이 전가된 정죄라는 사실과 그 전가된 죄에 대한 치유책은 오직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 외에 다른 것은 없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복음주의신학개론, 로버트. P. 라이트너, 기독교문서선교회, 243쪽)

결론적으로 언약적대표설에 대해서 실재설과 간접전가설으로 해석하는 것은 많은 학자들이 반대를 하며, 직접전가설로 해석하지만, 직접전가설에 대해서 그 신학적인 견해의 범위가 상당히 넓은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김광열교수)
언약적 대표설(Federalism)
이 입장도 아담의 범죄행위와 모든 우리들의 죄인됨의 사실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을 말한다는 점에서 어거스틴의 실제설과 같으나, 그 연관성의 원리에 대해 달리 설명한다.그 다른 원리란 아담을 모든 인류의 혈통적 대표(조상)로 볼 뿐만 아니라 언약적 대표(머리)로 본다는 점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행정원리란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나머지의 모든 인류의 대표자로서 범죄한 것으로 보셨으며, 그의 범죄행위의 결과는 그의 후손의 행위로 간주되었고 그렇게 하여 모두 죄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언약적 대표설은 바빙크, 마첸, 머레이, 벌코프(H.Bavink, G.Machen, J.Murray, L.Berkhof) 등과 같은 위대한 개혁주의 신학자들에 의해서 주장되어졌으며 관련성구인 로마서 5장 12절 이하의 내용을 가장 적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우선 위에서 언급했던 12절의 '죄를 지었다'에 대한 해석은 어거스틴의 실재설과 같이 본문의 단순부정과거 형태를 그대로 자연스럽게 따를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으나, 좀더 근본적으로는 로마서 5장 12절에서 21절에 나오는 아담과 그리스도의 평행구조의 기본원리에 가장 부합되고 있는 것이다. 

4) 십자가를 부정한다는 주장: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십자가를 부정하면 어떻게 부활을 주장할 수 있나요? 
십자가의 죽음이 있으므로 다시 사는 부활을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단 한번도 한마음교회의 책을 본 적도 없고, 설교를 들어본 적도 없고, 단 한번도 조사나 연구를 해 본적이 없으면서 무조건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자체가 참으로 신기합니다. 참으로 황당한 억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단연구를 어느 특정한 다른 사람에게 간접적으로 듣고 단정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았는데, 이런 사람들은 이단연구를 할 자격이 없습니다.

5)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었다는 내용 : 

참으로 트집을 잡으려고 애를 쓴다는 생각이 듭니다.
춘천 김성로목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는데, 부활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았다고 말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었다는 뜻은 정통신학적인 해석입니다. 이것을 비판하는 사람은 정말로 성경적인 지식이 부족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롬 1: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롬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림모목사는 위 성경에 대해서 그런 뜻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로마서 1:4은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셨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아래 주석들은 모두 그렇게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림모목사는 전에 언약적대표설에 대해서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보여주었고, 감리교의 만인구속설을 이단인 것처럼 주장하더니, 이번에도 정확한 해석을 마치 잘못된 해석인 것처럼 비판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신학적 지식이 매우 부족한 것으로 보입니다. 

(벵겔신약주석)
4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바울은 그리고 나 그러나 가 아니라, 정관사를 다시 사용하고 있는데, 반복해서 사용하면 그 관사는 에피타시스(epitasis)를 이룬다. (즉, 그 정관사가 지배하는 단어들이 강조되는 것이다.) 구주의 양성(兩性)이 함께 언급되어 있는 많은 구절들에서, 그의 인성(人性)이 먼저 언급되어 있는데, 이는 그의 신성(神性)이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 연후에야 모든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그 (헬, 이 사람)라는 대명사가 아주 흔하게 반복되어 있다. 즉, 다른 사람이 아니고, 그를 강조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9:20, 22의 (이 사람)등. V.G.). 분사, 인정되었다(선언되었다)는 1절에 나오는 (택정되었다) 보다 훨씬 뜻이 깊다. 왜냐하면 여럿중 하나는 택정되지만, 그 유일한 하나는 인정되거나 또는 선언되는 것이다(사도행전 10:42). 유명한 구절인 시편 2:7에 나오는 (영, 선포, 아주 확실하게, 너는 내 아들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아들을 사람들에게 증거 하는 것도 인정하는 것이라는 이 단어와 같은 취지이다(사도행전 2:22). 바울은 대면에서 설교할 수 없었던 자들에게 글을 쓸 때에는 하나남의 아들의 영광을 특별히 자세하게 설명한다. 히브리서 10:8 등의 주해를 참조하라.

(호크마주석)
“인정되셨다”는 말은 헬라 원어로 “호리스텐토스”인데, 그 의미에 대하여 ⑴ 바르트(Barth)는 말하기를 “인정함”은, 역사적 행동이 이니고 원역사적(原歷史的)행동이라고 하였다. 이 견해는 계시(啓示)의 역사적 의미를 거의 무시한데 가까운 위기 신학(危機神學)의 사상이다. 우리는 이와 반대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곧, 역사 그것은 계시를 유효하게 파악할 수 없으나, 하나님의 능력에게 복속된 그 역사는 그리할 수 있다고 한다(행 16:14). ⑵ “인정되셨으니”란 뜻은, 예수님께서 부활 이전에도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나 부활 이후에야 인간의 인식에 완전히 인정되셨다는 뜻이라고도 하고, ⑶ 이것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인식에서 인정되신 사실을 말함이 아니고, 부활하신 후 하나님 앞에서 영광(人性)을 취하신 후 없었던 영광을 얻으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는 뜻이라고 한다(행 2:36).

(톰슨주석)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은 그분의 지상 사역의 2대 분기점이다. 특히 주의 부활은 그 분의 능력과 신성을 나타내주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인류가 경험한 최대의 경이라고 할 수 있다. 주께서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십자가 위에서 극한적인 고통을 당하심으로 인류의 죄악을 대속하였을 뿐 아니라 당신의 신적능력으로 죽음을 이기시고 성도들에게 영생의 축복을 약속해 주셨다. 

6) 먼저 자신들에 대해서 해명을 하여야 한다.

림모목사가 제시한 피해자 사례는 문제가 많은 모목사의 경우입니다. 그 목사가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림목사가 다시 이 사례를 인용한다는 것은 고의적인 목적이 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림목사는 그가 문제가 많은 목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의 피해사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문제가 많은 목사의 가족들이 춘천 한마음교회를 다닌 것은 피해사례가 아니라, 장려하고 칭찬하여야 할 사례입니다. 
그와 함께 사역하는 이모목사라는 분은 신옥주를 영입한 박모목사가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고 두둔하였고(메일을 증거로 갖고 있음), 정이철목사는 금년 한국에 왔을 때에 베리칩과 음모론을 주장하고 율법주의를 주장하는 에스라하우스 노우호목사의 교회에서 세미나를 한 바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먼저 해명을 하여야할 것입니다. 그는 항공요금을 충당하기 위하여 문제있는 곳에서 세미나를 해도 좋으며, 정작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덮어두려고 하고, 정작 문제가 없는 곳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감정으로 문제를 삼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7) 사소한 표현은 수정하였다

사소한 문제는 발견되지만 그것을 조사하여 보니 표현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실제로는 신학적인 문제점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수정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중요한 문제도 아니고, 부수적인 문제로서 실제 사상이 아니라 표현 상 문제점이 몇개 있었으며, 이미 몇몇 이단연구가들이 검토를 하고 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단을 비판하고 이단을 공격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문제가 없는 것을 개인적인 감정때문에 공격하는 것은 금지하여야 할 일입니다. 저는 이 분들이 좀 이성을 찾고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정이철목사는 마치 독이 오른 짐승과 같이 홈페이지에서 이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미국에서도 평판이 매우 안좋은 정이철목사는 한국에서도 그 명예가 추락하고 있습니다. 

이단을 이단이 아니라고 하여도 안되지만, 이단이 아닌 것을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더욱 조심하여야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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