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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 가서 영정 앞에 '헌화-기도' 해도 될까?
예장합동 제100회 총회 신학부의 총회적 입장 정리 연구①
2015년 11월 12일 (목) 01:21:12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 주요 교단들의 정기총회에서 이단 사이비 관련 보고서들이 보고되었다. 예장합동(총회장 박무용 목사) 제100회 총회에 보고된 신학부의 총회적 입장 정리를 위한 연구보고서들을 소개한다. / 편집자 주 ]


【 <교회와신앙> 】 예장합동(총회장 박무용 목사)은 제100회 총회에서 신학부의 연구보고서들을 처리 총회적 입장을 정리했다. ‘장례문화’를 비롯해 ‘이단과 사이비와 이단성 분류’, ‘십일조’, ‘가정교회 운동’, ‘단 사상’ 그리고 ‘신사도 운동’ 등이다.

먼저 ‘개혁주의 관점에서 본 장례문화(헌화, 영정 앞 기도)에 대한 총회적 입장 정리’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받아 ‘헌화’와 ‘영정 앞에서의 기도’를 허용하기로 했다.

헌화는 ‘번잡한 곡, 전과 상식 올리는 것, 분향 등을 대체하는 관행’으로 보았다. 연구보고서는 “유족들의 고통을 개선하고 고인의 삶을 상징적으로 회상하는 것을 돕는다는 점에서 허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영정 앞 기도도 “죽은 고인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고 유족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한 허용될 수 있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연구보고서는 부의금과 밤샘, 추모예배 등도 허용될 수 있다고 했다.

  
▲ ⓒSANHO


헌화와 영정 앞 기도, 이 두 순서는 “상주들이 문상객을 맞이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준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고 보았으며, 부의와 밤샘은 “재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위기를 만난 이웃을 조금씩 힘을 모아 도와서 위기를 극복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이웃사랑과 연대성의 실천이므로 허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추모예배도 “제사나 고인을 위한 순서를 배제하고 고인이 생시의 신앙생활과 그 신앙생활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회상하고 오늘의 삶의 결의를 다지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면 유족들의 슬픔을 점진적으로 극복하는 것을 도와 줄 수 있으므로 허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보고서는 이에 앞서 “개혁주의 장례 예식은 어떤 경우에도 죽어서 세상을 떠난 고인을 위한 예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왜냐하면 육체적인 죽음으로써 육체와 분리된 영혼은 천국으로 바로 직행하든지, 지옥으로 바로 직행하고, 하나님이 특별한 비상섭리로써 허락하시지 않는 한 현세 안으로 결코 돌아 올 수도 없고, 현세와 어떤 형태로든 교통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


따라서 “죽은 영혼이 일정한 기간 동안 현세 주위를 배회한다거나 죽은 영혼이 조상신인 귀신으로 승화되어 사당에 머무는 것을 전제로 하는 유교의 예식절차들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죽어서 천국에 가기 전에 연옥에 가 있는 것으로 가정된 죽은 영혼들을 위하여 미사나 연도를 통하여 교통하는 것을 전제로 한 로마 가톨릭의 예식 절차들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고 못 박으면서 “개혁주의 장례예식은 고인을 잃은 큰 슬픔과 상실감을 안고 있는 유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여 슬픔과 상실감을 점진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또한 점진적으로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것을 도울 수 있도록 장례 예식을 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결론에서 “개혁주의 장례 예식은 복음적인 생사관을 분명히 선포함으로써 믿지 않는 사람들로 하여금 신앙을 갖도록 하고, 믿는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한층 더 북돋우어 주는 절차들로 구성되어야 한다.”면서 장례 예식의 모든 절차들마다 반드시 예배순서가 들어가야 함을 강조했다.

예장합동 제100회 총회 신학부의 ‘개혁주의 관점에서 본 장례문화(헌화, 영정 앞 기도)에 대한 총회적 입장정리’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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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장합동 제100회 총회 신학부 연구보고서 ① ]

개혁주의 관점에서 본 장례문화(헌화, 영정 앞 기도)에 대한 총회적 입장정리


1. 개혁주의 장례 예식은 어떤 경우에도 죽어서 세상을 떠난 고인을 위한 예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육체적인 죽음으로써 육체와 분리된 영혼은 천국으로 바로 직행하든지, 지옥으로 바로 직행하고, 하나님이 특별한 비상섭리로써 허락하시지 않는 한 현세 안으로 결코 돌아 올 수도 없고, 현세와 어떤 형태로든 교통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죽은 영혼이 일정한 기간 동안 현세 주위를 배회한다거나 죽은 영혼이 조상신인 귀신으로 승화되어 사당에 머무는 것을 전제로 하는 유교의 예식절차들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죽어서 천국에 가기 전에 연옥에 가 있는 것으로 가정된 죽은 영혼들을 위하여 미사나 연도를 통하여 교통하는 것을 전제로 한 로마 가톨릭의 예식 절차들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사후 내세관은 명쾌하고 분명하기 때문에 유대교에서처럼 불명확하고 모호한 내세관을 반영하는 장례예식도 받아들일 수 없다.


2. 개혁주의 장례예식은 고인을 잃은 큰 슬픔과 상실감을 안고 있는 유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여 슬픔과 상실감을 점진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또한 점진적으로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것을 도울 수 있도록 장례 예식을 구성해야 한다.

사람의 영혼은 육체적 죽음 후에 현세를 떠나고 어떤 방식으로도 현세인들과 교통할 수 없다는 점을 극단적으로 내세워서 장례 예식의 절차를 소홀히 여기거나 단순히 공리주의적이고 편의적인 사고에만 몰두하여 장례 절차를 번거롭게만 여기는 것은 개혁주의적 기독교의 바른 장례 문화관이 아니며, 매우 무례한 행태다.


개혁주의적 장례 예식은 유교예식처럼 상류층의 인사들만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지나치게 번잡함을 피하고 간소화시키면서도 임종예배, 입관식, 발인식, 하관식, 추모예배 등과 같은 적절한 몇 단계의 장례 절차들을 신중하게 치름으로써 장례 절차를 진중하게 다루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헌화, 영정 앞에서의 기도, 부의금과 밤샘, 추모예배 등은 허용될 수 있다. 헌화는 번잡한 곡, 전과 상식 올리는 것, 분향 등을 대체하는 관행으로서 유족들의 고통을 개선하고 고인의 삶을 상징적으로 회상하는 것을 돕는다는 점에서 허용될 수 있다. 영정 앞 기도는 죽은 고인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고 유족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한 허용될 수 있다.


이 두 순서는 상주들이 문상객을 맞이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준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부의와 밤샘은 재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위기를 만난 이웃을 조금씩 힘을 모아 도와서 위기를 극복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이웃사랑과 연대성의 실천이므로 허용될 수 있다.

추모예배도 제사나 고인을 위한 순서를 배제하고 고인이 생시의 신앙생활과 그 신앙생활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회상하고 오늘의 삶의 결의를 다지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면 유족들의 슬픔을 점진적으로 극복하는 것을 도와 줄 수 있으므로 허용될 수 있다.


3. 결론

개혁주의 장례 예식은 복음적인 생사관을 분명히 선포함으로써 믿지 않는 사람들로 하여금 신앙을 갖도록 하고, 믿는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한층 더 북돋우어 주는 절차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것이 장례 예식의 모든 절차들마다 반드시 예배순서가 들어가야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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